
- 배경
영화 〈조디악〉은 1960~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실제 연쇄 살인 사건, 이른바 ‘조디악 킬러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 시기는 베트남전의 후유증, 히피 문화의 쇠퇴, 경제 침체 등 사회적 불안이 짙게 흐르던 시대였으며, 대중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정체불명 연쇄살인범’의 존재를 실시간으로 접하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매우 섬세하고 밀도 있게 재현하며, 단순히 범인을 찾는 스릴러를 넘어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집착”이라는 심리적 테마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감독 데이비드 핀처는 실제 수사 기록, 당시 경찰 보고서, 신문 기사, 생존자 증언까지 집요하게 조사하며 ‘가능한 한 가장 사실적인 재구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영화는 범인의 정체를 단정하지 않고, 사건을 좇는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 피로, 집착, 좌절을 통해 “미제 사건이 남기는 공백”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습니다. 당시의 도시 풍경, 문화, 수사 체계, 언론과 경찰의 경쟁적 관계 등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덕분에, 〈조디악〉은 “실화 기반 스릴러의 정점”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 줄거리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사에서 일하던 만화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어느 날 신문사에 도착한 편지 한 통을 접하게 됩니다. 편지의 주인은 자신을 ‘조디악’이라 부르는 익명의 살인범이며, 혼란스러운 암호 메시지와 살해 사실을 담은 편지를 언론사와 경찰에 동시에 보냅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하지만, 범인은 끊임없이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과시하며 언론을 조종하고, 수사를 교란하는 행각을 이어갑니다.
그레이스미스는 본래 사건과는 무관한 외부인이었지만, 암호문과 조디악의 언행을 분석하면서 점점 사건에 깊숙이 빠져들게 됩니다. 반면 기사 담당 기자 폴 에이버리는 조디악의 위협에 시달리고, 경찰 역시 실적 압박과 관할권 문제로 수사가 지지부진해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주변 사람들은 조디악을 좇느라 점점 삶이 무너져갑니다.
하지만 그레이스미스는 오랜 시간 독자적으로 조사를 이어가며 특정 용의자에게 시선을 고정합니다. 단서들은 희미하고, 결정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는 점점 더 광기 섞인 확신에 사로잡히고, 결국 모든 인간관계와 직업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이릅니다.
영화는 사건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진실을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와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괴해가는 과정이 얼마나 처절한지 차분하게 드러냅니다.
- 등장인물
● 로버트 그레이스미스 — 제이크 질렌할
신문사 만화가이지만, 조디악 사건에 무기력하게 휘둘리는 경찰보다 오히려 더 강한 집착을 보이며 사건에 몰두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암호 해독과 단서 파악에 천부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점점 사건의 비공식 핵심 분석가가 되고, 결국 그 집착이 가족과 직장을 희생시키는 지경에 이릅니다. 조용하지만 강박적인 그의 모습은, 사건이 남긴 상처가 단지 피해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 폴 에이버리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범죄 전문 기자로, 조디악의 편지를 가장 먼저 파헤친 언론인입니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재치가 있지만, 조디악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자 점차 불안과 공포에 잠식됩니다. 결국 술과 자기 파괴적 행동에 빠져드는 그의 모습은 ‘사건을 기사거리로 소비하는 언론인’의 한계와 상처를 드러냅니다.
● 데이브 토스키 — 마크 러팔로
조디악 사건을 담당한 샌프란시스코 경찰의 형사로, 집요하고 성실한 수사자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관할 도시 간 협조의 어려움, 불충분한 증거, 기술적 한계 때문에 번번이 수사가 좌절됩니다. 그의 ‘무력함’은 당시 수사 체계의 제한을 상징하며, 미제 사건이 된 이유를 현실적으로 드러냅니다.
- 국내외 반응
〈조디악〉은 개봉 당시 흥행 면에서는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데이비드 핀처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혔습니다. 특히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스릴러’에서 흔히 시도되는 자극적 연출을 철저히 배제하고, 조사·기록·증언 등 사실의 조각을 정교하게 배열해 서늘한 긴장감을 구축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해외 평론가들은 “스릴러 장르의 새로운 기준”, “압도적 사실성과 극도의 절제미가 만들어낸 명작”이라며 극찬했고, 타임지·롤링스톤·가디언 등 주요 언론에서도 2000년대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꾸준히 포함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초기에는 조용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되돌아보면 가장 뛰어난 실화 스릴러”라는 평가가 늘었습니다. 특히 핀처 특유의 무표정하고 불길한 분위기,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사건 재구성이 국내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범인의 정체’를 말하지 않는 대신, 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분열되고 소진되는지를 중심에 놓은 점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There’s more than one way to lose your life to a killer.”